• [기고] ③ 무너진 일상을 세우는 힘...‘쉼표’와 ‘리추얼’이 만드는 자립의 토양
    • 비즈인천은 인천의 산업과 경제를 넘어, 이 도시에서 청년들이 머물 수 있는 ‘정주 조건’을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유유기지 부평과 함께 현장의 시선에서 현상을 짚어보고 해법을 모색하는 기고 연재를 시작합니다. 청년들이 왜 인천에 머물지 않고 ‘환승역’처럼 느끼는지, 인천을 ‘청년이 머무는 곳’으로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다룹니다. 이번 기고가 지역과 청년을 잇는 새로운 논의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비즈인천] 번아웃의 시대,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다

      취업 준비의 장기화와 경제적 불확실성은 청년의 일상을 가장 먼저 파괴한다. 청년 지원 매니저들이 현장에서 만난 청년들은 구직, 주거, 금융 등 저마다 전혀 다른 삶의 숙제를 안고 센터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이 다층적인 결핍의 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공통으로 발견되는 정서적 고갈과 심리적 위축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상의 에너지가 소실된 상태에서는 그 어떤 화려한 지원 정책이나 구직 기회도 성장의 동력으로 치환되기 어렵다.

      당장 어디든 취업하라며 속도를 재촉하는 조언이 현장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유기지 부평은 이 지점에서 청년 정책의 우선순위를 과감하게 재설정했다. 무너진 마음의 탄력성을 먼저 복원하고, 스스로 일상을 통제할 힘을 기르는 ‘심리·정서 지원’과 ‘리추얼(Ritual)’ 프로그램을 정책의 핵심 라인업으로 배치한 것이다.

      심리적 고립을 공동체로 치유하다, ‘유유심(心)표’의 관계망

      매니저들과의 초기 일대일 상담이 청년의 숨겨진 결핍을 발견하는 스크리닝 과정이라면, 심리 정서 지원 사업인 ‘유유심(心)표’는 거대한 사각지대를 메우는 정교한 처방전이다. 청년들의 정서적 위기는 이미 개인의 유약함이 아닌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드러나고 있다. 국무조정실의 「2022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 및 통계청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고립·은둔을 생각하는 위기 청년 규모가 최대 약 54만 명에 달할 수도 있다는 추정이 나왔다.

      아울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국내 우울증 환자는 2020년 83만 7,808명에서 2024년 110만 6,603명으로 약 30% 늘었다. 특히 연령대별로는 2024년 기준 20대 환자가 전체의 약 17.5%인 19만 4,200명에 달해,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유심(心)표’는 이러한 사회적 고립의 문제를 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그룹 상담이라는 유기적인 형식을 도입했다. 자립 준비 청년이나 고립·은둔 청년처럼 기존의 제도권 전달체계가 세밀하게 포착하지 못했던 청년들이 골방에서 나와 마주 앉는 순간,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라는 연대의 감각이 깨어난다. 이 깨달음은 단절되었던 사회적 관계망을 복원하는 첫 단추이자, 고립된 청년들이 다시 지역 사회로 걸어 나오는 가장 강력한 마중물이 된다.

      지속 가능한 자립을 위한 실험, ‘청설모’와 '리추얼'의 과학

      심리적 안정이라는 토양이 다져졌다면, 그다음 단계는 일상을 스스로 통제하며 느낄 수 있는 자기 효능감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 유유기지 부평은 지난 2025년부터 일상생활 설계 프로그램인 「청설모(청년 생활 설계 모임)」를 도입하여, 현재 4기째 성공적인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거창하고 불확실한 미래의 목표 대신 보통의 하루에 집중하며 작은 성취를 복리처럼 쌓아가는 리추얼 트렌드를 청년 정책의 영역으로 확장한 것이다.

      「청설모」 프로그램은 청년들의 깨진 일상 균형을 붙잡기 위해 세 가지 뾰족한 트랙으로 정밀하게 가동한다.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며 정서적 항상성을 유지하는 ‘마음 온도’ ▲다채로운 일상적 경험을 통해 시야를 확장하는 ‘감각 수집‘ ▲신체의 미세한 변화를 감지해 육체적 에너지를 깨우는 ’몸의 신호‘ 트랙이 바로 그 축이다.

      참여 청년들은 90일 동안 명상, 글쓰기, 달리기 등 자신만의 리추얼을 실천하며 매일의 기록을 아카이빙(Archiving)한다. 실제 지난 기수들의 운영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참여 청년의 95%가 ‘일상의 긍정적인 변화’를 체감했다고 답했으며, ‘자기성찰에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은 100% 전원 일치를 기록해 프로그램이 청년들의 삶에 정밀하게 도달했음을 증명했다.

      단순히 혼자만의 노력으로 끝내지 않고, 축적된 일상의 데이터를 전시용 성과물로 편집하여 지역 사회와 공유하는 과정은 청년들에게 단순한 취미 이상의 사회적 효능감을 선사한다. 나만의 작은 루틴을 지켜냈다는 성공의 경험들이 모여 나도 내 삶을 통제하고 바꿀 수 있다는 확신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이러한 느슨하지만 단단한 지역 기반의 리추얼 커뮤니티는 청년 고립을 막는 가장 실질적인 사회적 방파제가 된다.

      지역 정착을 위한 자립의 예행연습

      결국 유유기지 부평이 펼쳐 보이는 심리 지원 및 리추얼 프로그램은 청년이 지역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거듭나게 하는 일종의 자립을 위한 예행연습이다. 관계가 회복되고 일상의 감각이 단단해진 청년은 더 이상 외부의 거친 풍파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지역에 뿌리를 내린다.

      다음 글에서는 이러한 현장의 성과들을 바탕으로, 유유기지 부평이 앞으로 그려갈 지역 밀착형 정책 게이트웨이의 미래 청사진과 인천 청년들의 정착을 위한 최종적인 정책 제언을 담아 연재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문명선 유유기지 부평 센터장
      문명선 유유기지 부평 센터장


      현 청년공간 유유기지 부평 센터장
      현 부평구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위원
      전 고용노동부 청년도전지원사업 지원기관 선임컨설턴트
      전 고용노동부 국민취업지원제도 선임컨설턴트
      전 고용노동부 취업성공패키지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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