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인천] “배다리 문화공원을 사용하는 주체는 우리 주민입니다. 공원에 무엇을 담고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갈지 주민 의견을 반영해야 합니다”
인천 동구 금창동 ‘세대공감센터’ 3층 회의실에는 금창동 배다리 주민들의 열정이 가득했다. 배다리 주민협의회는 한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회의를 개최한다. 지난 3월 안건은 숭인지하차도 상부 공간에 조성될 ‘배다리 문화공원’ 설계 방식이었다. 배다리 주민 30여 명과 인천시, 동구청, 월미공원사업소 관계자들이 모였다. 이미 공원 조성 자체는 결정됐지만, 정작 공원의 모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그 핵심 쟁점이 회의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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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리 주민협의회 현장. 출처=비즈인천 |
배다리 문화공원은 동구 창영동 13-31번지 일원, 약 6,621㎡ 규모로 조성되는 사업이다. 총 사업비는 약 13억 원이다. 숭인지하차도 상부 공간을 배다리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주민들이 쉴 수 있는 쾌적한 공원으로 활용하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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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리 문화공원 조성사업 대상지. 출처=인천시 |
관련 사업은 이미 여러 단계를 지나왔다. 인천시는 최초 배다리 관통도로로 불리는 원도심 남북 연결도로 실시계획 인가를 1999년 고시했다. 이후 2001년 본격적인 공사를 시작했다. 동국제강과 송현터널을 지나는 1구간과 송현터널에서 송림로를 지나는 2구간, 유동삼거리에서 삼익아파트를 지나는 4구간까지 완성했지만, 배다리를 관통하는 중구~동구 연결도로는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삽을 뜨지 못했다. 마을 단절로 인한 생활권 붕괴와 배다리가 지닌 문화·역사 훼손을 막아야 한다는 호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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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숭인지하차도 위치도. 출처=인천시 |
10년 가까운 갈등 끝에 2019년 8월 21일 민관협의회 합의를 통해 도로를 지하화(숭인지하차도)하고 그 상부에 공원과 주민을 위한 복합 커뮤니티센터(지상 4층, 연면적 6,936㎡ 규모)를 조성하는 방안이 확정됐다. 이후 2022년 2월 25일 숭인지하차도가 착공됐으며, 2027년 5월 준공을 목표로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이다.
2026년 2월 4일에는 배다리 문화공원 실시설계 용역비가 도로과에서 월미공원사업소로 재배정됐다. 이날 배다리 주민협의회 안건인 숭인지하차도 지상부지 공원 조성과 관련해 인천시와 동구청 관계자뿐만 아니라 월미공원사업소 관계자까지 자리한 이유다.
배다리 주민협의회는 숭인지하차도 완공 후 지상 부지에 조성할 배다리 문화공원과 복합 커뮤니티센터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고민하며 머리를 맞대고 있다.
공모냐, 직접 발주냐…결과를 바꾸는 선택
이날 회의의 핵심 쟁점은 배다리 문화공원의 설계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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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다리 주민협의회 현장. 출처=비즈인천 |
공모 방식은 다양한 아이디어를 반영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절차가 길고 추가 비용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 실제 공사 발주까지 약 23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발주처가 직접 설계를 맡기면 약 16개월로 기간을 줄일 수 있고, 예산 범위 내에서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점도 분명하다. 직접 발주 방식은 설계 변경이 어렵고, 창의적인 디자인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
선택은 단순하다. “빠르게 만들 것인가, 더 나은 결과를 만들 것인가.”
배다리 주민협의회 “우리는 공원을 요구했지만, 내용을 본 적 없다”
이날 논의에서 구체적인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은 주민협의회 측이었다.
이철완 배다리 주민협의회장은 “처음에는 주민들이 공원을 만들어달라고 요구했고, 어떤 공간이 필요할지 의견을 모아 전달했다. 하지만 공원이 만들어지기로 결정된 뒤에는 정작 공원이 어떤 모습인지 구체적인 그림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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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완 배다리 주민협의회장. 출처=비즈인천 |
즉, 공원 조성은 결정됐지만 설계 과정에서 주민은 빠져 있었다는 문제제기다. 정작 공원을 사용할 주체는 주민인데 누굴 위한 공원이냐는 목소리가 나온 이유다.
이 문제를 인식한 이철완 회장과 주민협의회는 변화를 시도했다. 건축사 세미나를 열고 전문가를 초청해 학습을 진행했다. 어떤 방식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지 스스로 판단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결론이 ‘공모 방식’이었다. 숭인지하차도 상부 공간에 공원뿐만 아니라 복합 커뮤니티센터를 조성해야 하는데, 두 공간을 따로 만들면 결과가 어색하고 효율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로 통합해 두 공간의 조화를 추진하는 공모 방식으로 설계하는 게 더 낫겠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행정 구조는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공원과 커뮤니티 시설은 담당 부서가 다르다. 도로 상부라는 특성까지 겹치면서 사업은 자연스럽게 분리됐다.
배다리 주민협의회는 이 지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짚었다. 주민들은 하나의 공간으로 생각했지만, 행정적으로는 나눠서 진행되는 구조였고, 그 사실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공원에는 사업비 약 13억 원, 별도의 복합 커뮤니티 시설에는 약 150억 원이 배정됐다. 하나로 설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모 방식의 의미도 달라졌다.
배다리 문화공원과 복합 커뮤니티센터를 각각의 예산으로 설계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민들이 공모 방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공모 방식으로 가야 주민 의견이 설계 조건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야 배다리 문화와 역사, 정체성을 담은 공원이 나온다.” 즉, 공모는 단순한 디자인 경쟁이 아니라 주민 의견을 설계에 반영할 통로라는 의미다.
전문가 제언…“공원은 연결이다”
이날 배다리 주민협의회에서 전문가 강의를 맡은 정두용 인하대학교 대학원 도시재생학과 초빙교수 역시 같은 맥락에서 접근했다.
정두용 교수는 “배다리는 근대와 현대의 흔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창영초, 영화초, 수도국산 달동네, 도원역 등 다양한 역사 자원이 인접해 있다”며 “이 요소들을 어떻게 조화롭게 공원과 연결하느냐가 사업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녹지의 ‘연결성’을 강조했다.
정두용 교수는 “녹지는 분절되면 안 된다. 생활권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정원도시로 유명한 싱가포르나 일본 도쿄 미드타운, 연남동 경의선 숲길이 그 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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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두용 인하대 교수. 출처=비즈인천 |
그는 이어 “주민들이 원하는 공원 조성을 위해 주민 의견을 설계 단계에서 반드시 반영해야 한다. 도시재생은 참여와 합의의 결과물이다”라며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하고, 합의된 내용을 설계 조건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행정의 입장…“안전과 절차가 우선”
반면 인천시 도로과는 현실적인 제약을 강조했다.
도로 상부 공간이라는 특성상 구조적 안전 문제와 책임 소재가 중요하며, 관련 행정 절차를 모두 마친 뒤에야 착공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날 논의에서는 설계 방식 외에도 중요한 문제가 제기됐다. 공원의 범위다.
현재 계획은 공원 조성 범위를 도로 내부 공간으로 한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주택가와 맞닿은 자투리 공간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 공간은 그동안 주민들이 텃밭이나 쉼터로 활용해 온 생활 영역이다. 이를 제외한 채 공원을 조성할 경우, 공원과 마을이 단절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누구를 위한 공원을 조성할 것인가?”
결국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이 공원은 누구를 위한 공간인가.”
배다리 주민협의회는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관망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날 회의에서 주민들은 하나의 방향에 공감했다. 쉽게 결론을 내리기보다는, 더 논의하고 합의를 모으자는 것이다. 앞으로도 배다리 주민협의회는 공원과 복합 커뮤니티센터 조성을 두고 행정과 발생한 쟁점에서 어떤 의견을 전달할지 논의를 이어갈 방침이다.
배다리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배다리 생활 인프라는 행정이 일방적으로 제시하는 결과물이 아니라,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조성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