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고] ② 3만 원이 만든 연결의 기적, 마을이 아이들의 무대가 되는 법

    • 비즈인천은 인천 지역 경제와 산업을 다루는 동시에 이 도시의 다음 세대가 어떤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자 합니다. 그 일환으로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과 함께 ‘청소년 기본소득’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논의를 차분히 짚어보는 월간 칼럼 연재를 시작합니다. 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가 전하는 연재가 의미 있는 공론의 장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요즘 물가를 생각하면 3만 원은 참 애매한 액수다. 치킨 한 마리에 배달비를 더하면 아슬아슬하게 남거나 모자라고, 이름 좀 알려진 카페에서 디저트 몇 개 곁들이면 순식간에 사라지는 금액이다. 어른들에게는 '한 끼의 사치' 혹은 '스쳐 지나가는 월급의 일부'일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청소년에게 월 3만 원의 기본소득을 주자는 제안에 누군가는 짐짓 엄한 표정으로 묻는다. "그 푼돈으로 애들이 PC방이나 가고 군것질이나 하면 어떡합니까?" 이 질문을 들을 때마다 필자는 속으로 대답한다. "맞습니다. 바로 그 ‘군것질’을 제 손으로 당당하게 하게 만들자는 게 이 정책의 핵심이거든요."

      안내중학교의 실험이 보여준 것, ‘수동적 수혜자’에서 ‘능동적 주체’로

      지난 칼럼에서 필자는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아이들이 누리는 문화자본과 사회자본이 세습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누구는 주말마다 미술관에 가고 악기를 배우며 ‘세상의 언어’를 익히지만, 누군가는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때우며 방 안에서 고립된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 우리가 제안하는 청소년기본소득은 단순히 돈을 주는 복지가 아니다. 그것은 아이들이 방 문을 열고 나와 마을이라는 사회 속으로 입장할 수 있게 돕는 '입장권'이자, 타인과 관계를 맺기 위한 '최소한의 자원'이다.

      이 마법 같은 변화는 이미 실증된 바 있다. 충북 옥천 안내중학교에서 진행된 청소년기본소득 실험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당시 매달 일정 금액을 조건 없이 지급받은 아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고 물었을 때,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성적이 올랐어요"라거나 "사고 싶었던 물건을 샀어요"가 아니었다. 아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친구에게 떡볶이를 사줄 수 있게 된 게 가장 좋아요", "부모님 생신 때 제 돈으로 선물을 골랐어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그 돈을 '소비'할까 봐 걱정했지만, 정작 아이들은 그 돈을 '관계'를 위해 사용했다. 무언가를 소비하거나 참여할 때마다 부모의 허락과 검열을 거치고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만 했던 수동적인 존재에서 비로소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나눌 수 있는 능동적인 주체로 거듭난 것이다. 3만 원이라는 돈은 아이들에게 ‘나눌 수 있는 자존감’을 선물했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원’이 생기자, 아이들은 비로소 마을의 가게 문을 당당히 열고 들어가 상인들과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돈은 아이들의 주머니에 머물지 않고 마을의 실핏줄을 타고 흘렀으며,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마을의 일원’이라는 감각을 익힌다.

      ‘민수’가 PC방 대신 마을 카페로 향하게 된 이유

      인천의 어느 골목에 살고 있는 중학생 민수(가명)의 하루를 상상해 보자. 민수의 부모님은 맞벌이로 늘 바쁘시다. 학교가 끝나면 민수는 주로 PC방으로 향한다. 적은 돈으로 가장 오래 머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민수에게 동네는 그저 어둡고 무채색인 공간이다. 가게 주인들과 눈을 마주칠 일도, 인사할 이유도 없다. 주머니가 가벼운 민수는 마을에서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민수에게 매달 3만 원의 ‘인천 청소년 기본소득’이 지급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돈은 지역화폐로 지급되어 마을 내 ‘기본소득 스토어’나 ‘청소년배움터’, ‘청소년 자치 카페’에서 사용할 수 있다. 이제 민수는 PC방 대신 동네 서점에 들러 평소 관심 있던 만화 작가의 신간을 뒤적거린다. 배가 고프면 늘 가던 편의점 대신 동네 분식집 문을 당당하게 열고 들어간다. 떡볶이 1인분을 주문하고 자기 몫을 계산하는 과정에서 분식집 아주머니와 자연스레 눈을 맞춘다. "오늘 학교에서 별일 없었니?"라는 아주머니의 인사는 민수에게 세상이 자신을 환대하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가 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기적은 경제학적 숫자로 환산되지 않는다. 민수가 쓴 3만 원은 마을 가게의 매출이 되고, 그 대가로 민수는 마을 어른들과의 ‘관계’를 산다. 아이들이 마을 곳곳을 누비며 사장님들과 안부를 나누는 순간, 마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배움터가 된다. 아이는 더 이상 혼자 방치되지 않고, 지역 사회의 실핏줄 속에서 시민으로서의 감각을 익힌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는 ‘기본 교육’의 실체다.

      사회라는 무대 위로 초청하는 청소년기본소득

      청소년기본소득은 아이들의 주머니에 돈 몇 푼 넣어주는 시혜적 사업이 아니다. 아이들의 동선을 바꾸고, 그 동선 위에서 새로운 만남을 설계하는 ‘사회적 조건’의 재배치이며 아이들을 사회라는 무대 위로 초대하는 가장 정중한 초청장이다. 아이들이 이 초청장을 들고 당당하게 마을 카페 문을 열 때, "어서 오렴"이라고 환하게 웃어주는 어른들의 얼굴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의 교육 격차는 비로소 해소되기 시작할 것이다. 아이를 혼자 두지 않겠다는 약속, 그 시작은 아이들의 손에 세상과 연결될 수 있는 작은 열쇠 하나를 쥐여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3만 원의 기적은 이미 우리 곁에서 시작될 준비를 마쳤다.

      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
      심준희 인천청소년기본소득포럼 대표


      現 인천송현초등학교 교사
      現 동구마을교육협의회 사무처장
      現 동구마을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
      現 서흥꿈세움교육사회적협동조합 이사
      前 전교조인천지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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